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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독서 연말결산

karrott 2020. 8. 15. 16:19

작년 말에 써둔 포스트인데 왠지 여기에 모아두고 싶어 옮겨왔다.


2019년의 마지막날까지 독한 감기에 걸려서 꼬박 이틀을 침대에서만 보냈다..

그래도 지금은 좀 정신이 들어서 본가 컴퓨터 앞에 앉은 김에 해보는 올해의 독서 연말결산

 

2019년 1월부터 지금까지 총 31권의 책을 읽었다.

(사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한 독서 리스트라고 해야한다. <쇼코의 미소>를 2018년 9월에 읽기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아서 방치해두고 있던걸 2019년 2월 어느 출근길에 마저 읽기 시작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왼쪽상단부터 오른쪽 순서대로 읽었다 (표지 이미지 출처는 왓챠)

 

고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어본 지가 처음인 것 같아서 스스로 좀 놀라우면서도 뿌듯했다.

주변에 열심히 지금까지 00권 읽었다며 보고를 가장한 자랑도 하고 다녔고ㅋㅋ

읽은 책들을 정리하다보니 올해의 개인적 독서테마가 있는 것 같길래 몇가지 정리해두려 한다.

 

01. 다시 소설을 읽게 되었다

 

 

31권 중 무려 16권이 소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선호하게 되면서 "소설 못읽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20대 초반의 꼬맹이는 비문학이 주는 "똑똑해지는 듯한 기분"에 홀릴 수 밖에 없었나보다ㅋ)

하지만 세상에는 재능 넘치는 이야기꾼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그냥 내가 읽기를 게을리했던거지.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를 기폭제로 해서 (정세랑 작가 이야기는 뒤에서 하겠다.. 할말이 많다..) <옥상에서 만나요>, <내게 무해한 사람> 등 페이지를 넘기는게 즐거우면서도 아까운 기분이 드는 좋은 작품들을 많이 접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16권 중 13권이 한국소설, 나머지 3권이 해외소설이었는데 전혀 의도한 바는 없었지만 한국소설은 모두 여성작가, 해외소설은 모두 남성작가였다.

2020년에는 해외소설 중에서 여성작가의 작품도 고심해서 리스트에 넣어봐야겠다.

(한국남성작가의 소설은... 주변에서 추천이 들어오면 고려를 해보고...)

 

02.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고민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산 류승연 작가의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알라딘 교양 PACK에서 제목으로 눈길을 사로잡아 바로 결제를 하게 만든 김원영 작가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SNS에서 추천하는 글을 읽고 구매한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

큰 기대없이 읽었다가 온 구절마다 다 하이라이트를 치면서 읽은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까지.

지금 생각하니 조금 놀라운데 인권문제는 내가 페미니즘을 알기 전부터 항상 나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대학에 진학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폭력을 휘두르고 그에 대해 논리를 들이대며 합리화를 하는지를 보면서 더욱 공부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2020년도 어김없이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상처주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고민해야지.

 

품격이 상대방을 적절하게 접대하는 연기에 의해 구성된다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김원영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중략)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중략)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김현경 - <사람, 장소, 환대>

 

사실 누구나 어디서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략)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 권력이다. (중략) 그렇기에 이성애자가 하는 '동성애자가 싫다'는 말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싫다'고 하는 말과 같지 않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이 하는 '장애인이 싫다'는 말은 장애인이 하는 '비장애인이 싫다'는 말과 같이 않으며, 국민이 하는 '난민이 싫다'는 말은 난민이 하는 '국민이 싫다'는 말과 같지 않다.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주체 사이의 권력관계가 그 말의 의미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김지혜 - <선량한 차별주의자>

 

03. 각자 함께하는 미래를 위한 준비

 

 

2019년은 개인적인 생활면에서도 그렇고 애인과의 관계서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많이 생각해본 해였다.

큰 차질이 없다면 현재 애인과 함께 가정을 이룰 것 같은데 (기분이 이상하다ㅋㅋ) 혼자 살든, 같이 살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비록 나는 현재 남성과 둘이서 가정을 이룰 생각을 하고 있지만 기존에 있던 가족의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함께한다는 선택을 내린다면 그것이 혼자인 것보다 더 나은 결정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결혼이 본인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탈혼'을 결심하고 홀로서기를 한 여성의 이야기, 전통적인 여성-남성 조합의 부부만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가족을 두 여성이 함께 이루며 겪은 시행착오 이야기, 혼자서도 삶을 잘 가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조금은 허세롭지만 나름대로 매력있는 페스코베지테리안의 이야기는 기성세대가 현재 우리 세대에게 보여준 것 이외의 형태로도 가족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주었다.

나보다 먼저 다양한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려 오늘을 살고있는 여성들 덕분에 우리가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 현재는 애인과 자녀계획은 없는 걸로 얘기를 한 상태인데 반려동물은 고려사항에 계속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중이다. 애인은 동물을 좋아하지만 반려동물이 곁을 떠났을 때의 슬픔을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되나보다.

 

사람만 보는 개의 슬픔도, 개를 잃은 사람의 슬픔도 있다. 모두 사랑의 일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슬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슬프지 않기보다는 슬픔까지 껴안고 사랑하기를 택한다. 동물을 사랑함은 슬픔까지 포함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슬픔보다 크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中 김하나 - <개의 슬픔>

 

04. 정세랑 작가님 사랑해요

 

 

올해 읽은 16권의 소설 중 8권이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었다..ㅋㅋㅋㅋㅋ

학회 친구 N에게 <피프티 피플>을 추천받아서 알게된 작가인데 읽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려서 닥치는 대로 작가님의 소설을 사들였다.

사실 올해의 목표가 정세랑 작가의 단독 저서를 모두 읽는 거였는데 <덧니가 보고싶어>만 남기고 다 읽겠다 싶었을 때 신간 <목소리를 드릴게요>가 나와버렸다... 신간 좋긴 한데... 성취감이 조금 떨어졌지...ㅎㅎㅎㅎ

정세랑 작가는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선함의 힘을 믿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물들의 대사를 읽으면 느껴지는게 많다.

참 다정하면서도 단단한 사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작가이다.

작가님 제가 많이 사랑합니다 책 많이많이 써주세요 하트하트


책 한권 한권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추천하는 책 몇 권만 뽑고 마무리

 

혼자 살든, 같이 살든 어쨌든 한국에서 살거라면김하나, 황선영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하는 책

읽고 너무 좋아서 애인에게도 선물했다 (그리고 고양이 얘기 잔뜩 함ㅋㅋ)

 

인간관계의 서툴음에서 나오는 먹먹함을 느끼고 싶다면최은영 - <내게 무해한 사람>

읽고 너무너무 좋아서 막판에 거의 줄줄 울다시피 한 소설인데 위 테마에서 다루기가 애매해서 못 다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쇼코의 미소>보다 훨씬 취향이었음

 

'나는 차별같은 거 하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면김지혜 - <선량한 차별주의자>

"이게 어떻게 차별이야?"하는 말에 조목조목 다 반박해준다

모든 연령대에 있어서 필독서 지정이 시급하다

 

남주가 짜증나지 않는 귀여운 로맨스 SF소설이 읽고싶으면정세랑 - <보건교사 안은영>

로맨스 소설이 여성의 수동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느낌이 많아서 좀 꺼리게 됐는데 정세랑 작가는 그런 거 없다

제목만 봐서는 SF물이 아닌 것 같지만 제대로 SF물이다ㅋㅋ

 

"메갈 그런거 다 정신병이야 세상엔 정상적인 여자가 더 많아"민지형 -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한(국)남(성)의 입장에서 본 요즘 한국사회의 이야기

 

귀여운 표지에 속지마세요 내용이 귀여운데 안귀여워요정세랑 - <이만큼 가까이>

책 소개에 '당신의 첫사랑은 얼만큼 가까이 있습니까 /아주 귀여운 소설의 발견'라고 되어있는데 이거 쓴 사람 누구냐...

정세랑 작가답게 위트와 다정함은 잃지 않지만 어두운 건 어두운거지...

황량한 신도시의 우울함과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읽어주세요 제발정세랑 - <피프티 피플>

분명 단편집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나면 장편소설이 된다

 

 

주절주절 쓰다보니 하루가 거의 다 가버렸는데 나름 1년을 잘 마무리하는 포스팅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도 열심히 책을 읽어야지 'ㅂ')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