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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독서 연말결산

karrott 2021. 1. 1. 02:19

이제야 날짜를 쓸 때 2020이라는 숫자가 낯설지 않게 되었는데 벌써 새해를 맞이할 때가 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올해도 1년동안 읽은 책들을 정리해본다.

 

2020년에는 총 37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중 34권을 완독했다.

읽기 시작한 책과 완독한 책의 숫자가 다른 이유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책 두 권과 읽다가 드랍한 책이 한 권이 있기 때문에..ㅎㅎㅎ

사실 올해 중반까지만 해도 거의 작년만큼의 책을 읽었길래 올해는 작년의 두 배의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나의 주된 독서시간인 지하철 통근시간이 잦은 재택근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고 점점 손에서 책이 멀어지니 집에서도 책을 읽지 않는 일명 '책태기'가 와버려서 결국 작년과 엇비슷한 완독수로 끝맺은 것이 조금 아쉽다.

 

읽은 순서는 왼쪽상단부터 오른쪽으로, 오른쪽하단에 회색처리된 책은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책 (표지 이미지 출처는 왓챠와 알라딘)

 

작년 독서 연말결산에서 나름의 독서테마를 잡아 리뷰를 한 게 꽤 괜찮았던 것 같아서 이번에도 작년의 포맷을 따라가볼까 한다.

(혹시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아래 링크로 👇)

 

2019 독서 연말결산

작년 말에 써둔 포스트인데 왠지 여기에 모아두고 싶어 옮겨왔다. 2019년의 마지막날까지 독한 감기에 걸려서 꼬박 이틀을 침대에서만 보냈다.. 그래도 지금은 좀 정신이 들어서 본가 컴퓨터 앞

leegyu-u.tistory.com

 

01. 소설을 향한 계속된 애정

 

 

작년에 이어 소설을 꾸준히 읽었다.

정세랑 작가님은 작년 <피프티 피플>을 계기로 사랑에 빠져 팬이 됐는데 올해 읽은 소설들도 역시나 마음이 풍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시선으로부터>는 작년 여름 엄마쪽 식구들과 다같이 하와이에 다녀온 여름 휴가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많아 코로나 시국에 묘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 밖에도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음복>이라는 엄청난 작품으로 처음 만난 강화길 작가님과, 포스텍 화학공학과 석사라는 엄청난 스펙의 SF소설가 김초엽 작가님과의 만남이 2020년의 큰 수확이지 않을까 싶다.

믿고 읽는 이야기꾼들을 하나둘씩 수집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 <종이 동물원>과 <그해 여름 손님>은 왓챠피디아 위시리스트에 꽤 오래전부터 담아두었던 책이라 드디어 읽었다는 점에서 묘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별점과는 완전 별개. 크흠.

(++) 정유정 작가님의 <7년의 밤>은 읽다가 너무 50대 아저씨 감성이라서 드랍했다... 책이 아무리 힘들어도 중도포기를 한 적은 없는데 이것도 첫 경험..

 

02. 개인의 이야기에서 얻은 삶의 해답

 

 

올해는 유난히 에세이류를 많이 읽은 기분이다. (에세이로 분류하기 조금 애매한 책들까지 에세이로 치부해버린 느낌이 있긴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 에세이를 많이 찾았는지 돌이켜보면 주로 내가 고민하는 이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할 때였던 것 같다.

한창 글을 쓰고싶어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 많을 때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큰 위로를 얻었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무이가 폐암을 진단받아 머리 속이 복잡해지자 <안간힘>, <네 컵은 네가 씻어>,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를 읽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대비하는 자세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 김혼비 작가님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운동의 원동력이 의무감이 아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고 실제로 올해 여름 아침조깅에 취미를 붙여 8월 장마가 오기 전까지 즐겁게 달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고, 비싼 정액권이 아까워 어거지로 운동복을 입는 것이 아닌 내 몸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느끼서 집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하는 말은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 요새 글이 점점 딱딱해지는 걸 느끼는데 김혼비 작가님의 위트 넘치면서도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놓치지 않는 글이 취향저격이라 내년에는 김혼비 작가님의 글을 필사해볼까 한다. 추천해준 친구에게 감사를 :)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 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은유 - <글쓰기의 최전선>

 

거듭, 말하지만, 커다란 고통은 우리를 집어삼키려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전에 없던 것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 겪은 고통이다. 또다시 나에게 고통이 찾아온다면, 그와 같은 고통을 먼저 겪은 이들이 남긴 글을 읽을 것이다. 그 책에서 위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 책 속에 길이 있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믿는다.
유병록 - <안간힘>

 

03.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올해 회사에서 팀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되어 한창 고민이 많던 시기가 있었는데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스스로 갈피를 잡기 위해 주변에서 추천받은 책을 몇 권 읽어보았다.

(자기계발서는 괜히 진부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사람은 결국 필요하면 찾게 되는 것 같더라..ㅋㅋㅋ)

조직문화나 매니지먼트 스킬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커리어 전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책들이어서 학교를 졸업하고 온전한 직장인 신분으로 보내는 첫 해에 읽어보기 적합한 책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팀장자리는 내가 조금 더 경험치가 생기면 하고싶다고 회사와 상의 끝에 내려놓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동안 한 여러 고민들이 앞으로의 커리어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과거에는 두려움이 조직의 성과 창출에 꽤 효과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변동성과 불확실성, 복잡성과 모호성이 공존하는 오늘날에는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변화의 추이를 제대로 파악한 조직만이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 리더는 이 점을 분명하게 깨닫고, 과거 산업혁명 시절에 머물러 있는 기존의 프레임을 의식적으로라도 바꿔야한다.
에이미 에드먼슨 - <두려움 없는 조직>

 

우리는 능숙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재능과 능숙함은 다르고, 후자는 무조건 꾸역꾸역의 나날이 필요하다. 버틴다고 뭐가 되지는 않지만, 그런 보장은 없지만, 재미없는 걸 참아내는 시간 없이는 재미가 오지 않는다.
이다혜 - <출근길의 주문>

 

 

04. 올해도 열심히 여성의 이야기를 읽었다

 

 

올해 완독한 34권의 책 중 26권의 책이 여성작가의 (또는 여성작가가 작가진에 포함된) 책이었다.

작년에 읽은 책도 셈해보니 31권의 책 중 24권이 여성작가가 참여한 책이었던 걸 보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성의 이야기를 읽어나간 것 같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다양한 생각을 하는 나와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건 내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기대하고,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좋은 양분이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꼭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 "여성됨(being a woman)"이 아니더라도 여성에게 마이크가 주어졌을 때 나는 기꺼이 그 무대의 관객으로 존재하며 같은 여성으로서 연대하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많은 여성들의 충실한 독자가 되기 위해 내년에도 열심히 여성작가의 책을 읽을 것이다.

 

이십 년에 한 번씩 오는 격변은 표현 능력의 도약일 수도 있고, 새로운 주제로의 전환일 수도 있고, 갑자기 마음을 빼앗는 재료일 수도 있고, 그때껏 발견하지 못했던 색일 수도 있고, 참선 끝의 득오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것에 대해서는 서구인들이 아주 깜빡 죽습니다만······ (웃음)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매일 그리되 관절을 아끼세요. 아, 지금 그 말에 웃는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는 사람이 있군요. 벌써 관절이 시큰거리는 사람도 많지요? 관절은 타고나는 부분이 커서 막 써도 평생 쓰는 경우가 있고 아껴 써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정세랑 - <시선으로부터>

올해도 짤막한 책 추천으로 마무리

 

일하는 여성이라면: 이다혜 - <출근길의 주문>

꼭 여성이 아니더라도 커리어 전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책.

내가 일을 잘 하고있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들 때마다 다시 읽어볼 것 같다.

 

피 한방울 나지 않는 맛깔난 스릴러가 보고싶다면: 강화길 - <화이트 호스>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음복>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완벽한 대상감이라고 생각해서 내용을 잊어버리고 다시 읽고 싶을 정도다.

내 기준 올해의 책 문학부문.

 

따뜻한 과학적 상상력을 길게 풀어쓴다면 바로 이런 거겠지: 김초엽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SF임에도 정세랑과 결이 다르다.

정세랑이 큰 붓으로 척척 획을 긋는 듯한 털털함을 지녔다면 김초엽은 작고 섬세한 붓으로 조심스럽게 터치를 하는 느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단편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스펙트럼>

 

학구열과 호기심에 불타는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면: 호프 자런 - <랩 걸>

내가 이과생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실에서 식물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작가의 삶에 묘한 동경을 느꼈다.

읽고나면 열과 성을 다해 좋아할 수 있는 무언가로 삶을 가득 채우고 싶어진다.

 

올해의 믿고 읽는 작가 리스트 신인상: 김혼비 - <아무튼, 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우울할 때 읽으면 아주 특효약이다.

나도 이렇게 위트 넘치고 찰진 글을 쓰고싶은데 말이지.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김승섭 -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담담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우리 사회가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는지, 또 그 아픔을 딛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신뢰가능한 출처의 논문과 데이터로 뒷받침한다.

내가 항상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사회와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따뜻하고 단단한 말로 긍정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교육은 누군가에겐 용기이자 구원이 되기에: 타라 웨스트오버 - <배움의 발견>

결코 얇지 않은 분량에도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스스로 폭력과 반지성주의로 점철된 삶에서 벗어난 작가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선함의 강함에 대해: 정세랑 -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세계의 기본이 되는 선함을 갖춘 등장인물들을 좋아한다.

다른 존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그들을 단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는 삶이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세계관은 읽는 내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준다.

 

 

 

12시 전에 다 쓰고 싶었는데 늦어버렸다!ㅋㅋㅋ

2021년도 꾸준히 독서하는 1년을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