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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독서 연말결산

karrott 2022. 1. 15. 23:52

새해가 되자마자 해외로 출장을 다녀오느라 보름이 지나서야 늦게나마 연말결산을 해본다.

2021년 동안 41권의 책을 완독했다!
매년 완독 목표를 작년보다 많이 읽는 것으로 잡고 있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마흔 권 이상을 읽었다니 뭔가 뿌듯하다.
읽은 책을 분류해보자면 소설 16권, 에세이 13권, 비문학 12권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중이 비슷비슷해서 집계해보고 조금 놀랐다.
(에세이와 비문학을 구분하기가 굉장히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책을 주로 구매하는 플랫폼인 YES24의 분류기준에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보태서 나눴다.)

읽은 순서는 왼쪽상단부터 오른쪽으로 (표지 출처는 교보문고)

01. 믿고 읽는 작가들

큰 고민없이 책에 씌여진 이름만으로 확신을 가지고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작가들을 알고 있다는 건 큰 행복인 것 같다.
나의 '믿고 읽는 작가 명예의 전당' 중 유일한 외국인인 호프 자런부터, 언제나 유쾌하지만 가볍진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김혼비, 언제 신간이 나오는지 항상 목 빠지게 기다리는 정세랑, 취향의 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첫번째로 이야기하는 최은영 등 지난 몇 년 간 책을 읽으며 취향의 작가들을 수집해왔고 올해도 그들의 신간으로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올해도 많은 책을 읽은 만큼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 할 수 있었는데, 따뜻한 시선의 에세이스트 김소영, '야알못'인 나도 한 페이지마다 포복절도하게 만든 쌍딸, 감칠맛 나는 글솜씨를 가진 박서련 그리고 나의 명예의 전당에 발을 들인 첫 남성작가 이현석이 명예의 전당 입성의 영광(?)을 안았다.
새로 접하는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과연 이 작가는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을지 기대하며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경험이다.

세상이 망가지는 속도가 무서워도, 고치려는 사람들 역시 쉬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절망이 언제나 쉬운 감정인 듯싶어, 책임감 있는 성인에게 어울리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된 변화가 확산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패턴이기 때문에 시선을 멀리 던진다. 합리성과 이타성, 전환과 전복을 믿고 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사는 종이 아니니까.
정세랑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이긴 날에는 이불 덮고 누우면 은은한 미륵의 미소가 떠오른다. 아 오늘 야구 개쩔었다. 내일 야구 또 봐야지.
쌍딸 -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

02. 나도 해본다 투자, 나도 읽어본다 경영서적

읽었다고 하기엔 두 권밖에 되지 않아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존엔 투자나 경영경제 관련 책은 쳐다도 보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올해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였던 <직장인을 위한 자산관리 101> 강의를 수강한 후, 자산관리와 투자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의 후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로👇)

[수강후기] <직장인을 위한 자산관리 101>: 첫 월급 받기 전에 이거부터 보고 시작하자

금융공포증을 가진 사람의 돈 관리 방법 강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앞서 나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는 금융이라면 치를 떨며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세상에서 혼자가기 제일 무

leegyu-u.tistory.com

내가 투자와 거리를 유지한 이유는 선택의 리스크를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과,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다른 사람의 실패담을 타산지석을 삼고, 전문가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떤 길로 가면 안되는지, 어디부터 시작해야하는지를 배우는 꼭 필요한 수순이었고, 투자라는 미지의 땅에 소프트랜딩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2022년에는 조금 더 전문적인 이야기도 읽어보는 시도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 솔직히 <살려주식시오>는 '올해의 제목상'을 주고 싶을 정도로 제목을 잘 지었다.

돈을 잃어도 시간을 잃어서는 안 된다. (중략)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주식투자를 하는 이유도 결국은 노후에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즉, 시간이라는 재화를 마련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박종석 - <살려주식시오>
“꿈에 날짜를 더하면 비로소 목표가 된다”는 말이 있다. 목표는 구체적인 날짜가 수반되어야 목표로써의 의미를 갖추게 된다. 산에 오를 때에도 언제까지 정상에 도달하겠다는 계획 없이 오르면 결국 그 속도를 가늠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재테크에서도 정해진 날짜가 없으면 목표를 온전히 이룰 수 없다.
김경필 - <결혼은 모르겠고 돈은 모으고 싶어>

03. 생각할 수 있는 세계의 확장

이제 곧 살아온지 30년차를 앞두다보니 어떤 일을 바라볼 때 편안하고 익숙한 관점이 생기는 느낌이다.
나만의 철학과 생각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일을 내 입장에서만 보는 편협함에 가까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상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고, 또 그 중 부지런한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펴내니 책을 읽다보면 편안해질만 할 때 쯤 나의 얄팍한 생각을 두드려깨줄 책을 만나 내가 아집에 사로잡힌 못난 사람이 되는 길목에 서있진 않은지 점검해 볼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어린이를 떠올리며 쉽게 절망의 말을 내뱉지 않는 어른이, 장애를 극복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비장애인이, 나의 소비가 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소비자가, 연어축제에서 물고기 맨손잡이가 아닌 물살을 거슬러 고향에 돌아오는 연어의 도약에 흥분하는 관중이 되고싶다.
(+) 개인적으로 <아무튼, 비건>은 크게 추천하지 않는 책이다... 비건이 아닌 사람을 일자무식의 수준으로 비난하며 "구글과 유튜브"가 알려주는 "진짜 정보들"을 강조한다. 세상엔 이보다 더 전문적이고 더 좋은 비거니즘 서적이 많을 것이다.

육류를 생산하려면 엄청난 자원 투입이 필요하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양의 자원이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집중 투입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중략) 육류 생산을 위해 동물에게 투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곡류, 정말이지 엄청난 양의 곡류다. (중략) 오늘날 인간이 10억 톤의 곡물을 먹어 소비하는 동안 또 다른 곡물 10억 톤이 동물의 먹이로 소비되고 있다. 그렇게 먹여서 우리가 얻는 것은 1억 톤의 고기와 3억 톤의 분뇨다.
호프 자런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장애가 있다는 것이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장애인에게 적절한 도움과 접근성을 갖춘 환경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애가 부정적인 낙인의 총체로 작용하는 사회에서는 ‘적절한 환경과 조건에서 장애인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선택지는 사라지고, 장애는 완전한 무능 혹은 그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의심의 대상으로 이원화된다.
김원영, 김초엽 - <사이보그가 되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문을 열고 닫을 때, 붐비는 길을 걸을 때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머뭇거릴 때 어린이에게 빨리 하라고 눈치를 주는 어른들을 종종 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간단한 일이라 어린이가 시간을 지체하면 일부러 꾸물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주는 어른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이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김소영 - <어린이라는 세계>
닭, 소, 말, 양, 돼지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사육되지 못하는 것은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다른 생물을 똑같이 학대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동물 학대를 정당화 시킬 수 있는 비겁한 논리다. 르포 작가 한승태가 쓴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우리가 이런저런 윤리나 논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잔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야기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니까. 먹거리로서의 살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오락거리로서의 살생과 학대부터 없애 나가야 한다.
김혼비, 박태하 - <전국축제자랑>

04. 펑펑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테마 없이 따로 뺐다.
지난 7월,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할무이와 작별해야 했다.
침대에 누워 눈물만 흘리던 밤들을 지나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고 느끼던 차에,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지하철에서 읽다가 울기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급하게 크레마를 덮고 애꿎은 천장만 노려보았다.
(최은영 작가가 이 책을 쓰는 내내 자기가 물주머니와 같았다더니 정말 나를 탈수직전까지 몰아세울 작정으로 이 책을 쓴 것이 분명하다.)
손녀딸에게 아프다는 투정을 부리기보다 재미난 얘기만 하고 싶다는, 짐으로 여겨지기 보다 말이 통하는 대화 상대가 되고 싶은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보낸 시간은 결국 자신만의 기억이 될거라고 이야기하는 '나'.
책의 내용은 단순히 손녀와 할머니의 관계보다 훨씬 큰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나에게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할무이와 나를 떠올리게 만들어 훨씬 더 개인적으로 와닿았다.
차마 지하철에서 읽을 수 없어 자기 전 침대에서 티슈곽을 옆에 두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면서 읽은 책.

“내가 하루에 먹는 약만 한줌이야. 근데 난 지연이 너랑 그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아. 그런 소리 지겹지 않냐. 다 늙어서 손녀딸한테 아프다고 투정하고 그런 거, 난 싫다. 그런 할머니 안 해. 너랑 재미난 얘기만 할래.”
할머니와 내가 같이 보냈던 시간은 나만의 기억이 되겠지.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 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눈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그 외의 책 추천

김정선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본인의 글을 스스로 다듬을 수 있게 된다.
소설과 이론을 번갈아가며 진행하는 독특한 방식이 매력있다.
다 읽고 나면 '적의를 보이는 것들'을 잊을 수 없게 된다.

박서련 - <체공녀 강주룡>
실제 을밀대에서 농성을 벌인 강주룡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읽고 너무 좋아서 주변 친구들에게 몇 번이나 추천을 하고, 개인적으로도 2021 올해의 문학으로 꼽고 싶다.
이 당돌하고 정 많은 사람을 이렇게나마 알게해준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한정현 - <소녀 연예인 이보나>
드라마도 하반기가 상을 타기엔 유리하다고 했던가.
너무 일찍 읽어버리는 바람의 올해의 문학으로 꼽히지 못한 감이 있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사랑을 하는 이야기.

이시하라 가즈코 -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해야할 일이 있을 때 자꾸 도망치려고 하는 스스로가 싫어지려던 참에 제목에 이끌려 고른 책.
읽는 내내 무슨 용한 점쟁이를 만난 것처럼 '나잖아?!'를 외치면서 읽었다.
어쩌다가 도망치고 싶어지는 지경까지 가는지, 어떻게 하면 그 지경까지 가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상황까지 갔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를 조목조목 잘 짚어준다.

장류진 - <달까지 가자>
2017년 코인 열풍을 배경으로 세 명의 회사 동기가 '달'을 향해 가는 이야기.
현실과 판타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루리 - <긴긴밤>
왜 동화는 약간 슬퍼야하는가 (Why Children's Book Should Be a Little Sad) 라는 컬럼이 생각나는 어린이문학.
이제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사촌동생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2021년 한해 동안 (완독일 기준) 월 별 완독한 책 수. 앱은 북플립

사람이 참 신기한 게 아무리 재밌는 책이라고 해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한 페이지 읽기도 어렵더라.
할무이의 건강이 본격적으로 악화되던 5월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그리더니 7월엔 단 한 권도 읽지 못했다.
기나긴 무기력의 터널과 책태기를 지나 연말에서야 조금 회복이 된 느낌이 들었는데, 그제야 책이 손에 잡히는 걸 보고 언제나 불도저처럼 독서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조금 인정하게 됐다.
어차피 행복하고 즐겁자고 하는 독서인데 굳이 여기서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울 필요는 없으니 그저 한창 재밌을 때 열심히 읽고 또 쉴 때는 잘 쉬면서 스스로를 다독여줄 생각이다.
2022년도 즐겁게 독서해야지 :)